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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찰,성당,교회)

봉은사(奉恩寺)의 보물창고 영산전(靈山殿)

 

 

 

 

 

영산전(靈山殿)

봉은사에서 가장 전경이 좋은곳이며 온후한 기도처로 알려져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하고 좌우에 제자인 가섭존좌와 아난존좌를 모셨으며 ,양 옆으로 16 아라한(나한)이 옹위하고 후불탱화와 16 나한도 등의 불화가 있다.

 

 

*봉은사 영산전 신중화(奉恩寺靈山殿神衆圖):서울문화재자료 제39호

 

1895년에 조성하였으며 봉은사 영산전에 봉안되어 있다. 당시의 신중도 양식을 잘 보여주는 세로 121.8cm, 가로 166.5cm 규모의 면본채색화로

편수(片手) 상규(尙奎), 금어 범화(梵華), 상선(尙先), 운조(芸祚) 등이 제작하였다.

화면 가운데에 위태천을 두고 좌우에 범천과 제석천, 일월천자(日宮天子)와 월궁천자(月宮天子), 천부중(天部衆)을 배치하였으며 하단부에는 신장 6구를 묘사해놓았다. 
 

*봉은사 목 삼존불상(석가불, 가섭존자, 아난존자) (奉恩寺 木 三尊佛像(釋迦佛,迦葉尊者, 阿難尊者):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27호 

 

 현재 봉은사 대웅전 뒤편에 소재한 영산전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석가불좌상과 목조가섭존자와 아난존자입상의 좌우 협시상이 삼존을 구성하고 있으며,

삼존상의 좌우에는 십육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다. 본존석가상은 불신 좌우, 앞, 뒤로 양감이 느껴지는 체구로 무릎 폭은 체구에 비해 좁은 편이다.

세부를 살펴보면, 머리와 육계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 마치 투구를 쓴 것처럼 두부가 둥글게 표현되었고,

그 정상에는 정상계주를, 두부의 전면중앙에는 반원형의 중간계주가 새겨져 있으며 머리위에는 나발이 촘촘하다.

얼굴은 방형에 가까운 둥근 상호에 이마의 선이 수평하고 이목구비는 다소 평면적이며 차분한 인상을 주는데 입의 양끝이 올라간 고졸한 표현이 눈에 띤다.

 어깨는 둥글고 대의는 우견편단식으로 입었는데 오른쪽 어깨를 감싼 대의자락이 허리안으로 들어가는 형태의, 이른바 변형식 우견편단 착의법을 나타내고 있는데,

조선후기에 흔히 보이는 표현이라고 하겠다. 가슴에는 군의의 윗부분이 드러나고 양쪽 무릎에는 부채꼴로 옷주름이 새겨져 있는데 매우 도식화되었다.

오른손은 촉지인처럼 아래로 내렸고 별재로 제작하여 손목에 끼워 넣은 왼손을 무릎위에 올려 손가락을 약간 구부려서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는데,

오른손은 아래로 내렸는데, 이 수인은 조각승 무염이 조성한 불갑사 대웅전 목조삼세불좌상의 본존 석가불상(1635년)을 비롯한 조선후기 석가불에서 자주 표현되는 수인이다.

본존상 좌측의 가섭존자는 머리 정상이 솟아오른 수행자의 모습으로 동안의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으며,

원령의 내의 위에 가사를 입고 복부 주변에는 요포 같은 것을 덧입었으며, 그 아래로 신대(紳帶)가 두 발 사이로 내려온다. 두손은 모아서 합장하였다.

 우측의 아난존자는 삭발한 승형으로 역시 원령의 내의 위에 가사를 걸치고 군의 중앙으로 신대가 흘러내리고 있다.

삼존상의 조성시기는 영산전 후불탱화의 화기에 1895년에 개금되었다고 하므로 최초의 조성은 이 보다 이른 시기일 것으로 생각된다.

봉은사 영산전 석가불상은 조선후기의 불상으로서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1895년에 개금된 사실이 후불 벽화의 화기에 명시되어 있으며

초성(初成)시기는 이보다 이른 18세기 후반 경으로 추정되므로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한다. 
 

 

 

*봉은사 목 십육나한상 (奉恩寺 木 十六羅漢像)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28호

 

봉은사 영산전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십육나한상은 석가불 좌상과 가섭·아난존자 삼존상의 좌우에 8구씩 배치되어 있다.

대체로 십육나한상의 배치는 좌측에 1, 3, 5, 7, 9, 11, 13, 15상이 봉안되고, 우측에 2, 4, 6, 8, 10, 12, 16상이 봉안되는 것이 통례이나,

현재 봉은사 영산전의 십육나한상은 그 순서가 교란되어 원 위치와 다르며, 16구 가운데 4구는 신작(新作)이다.

향 우측의 제1상은 승형의 머리에 두 손으로 합장한 젊은 모습의 나한상으로서 얼굴의 형태와 이목구비의 표현은 본존석가상이나 아난존자와 매우 유사하며

원령의 내의에 가사를 입었는데, 암좌의 정면에는 괴수면이 새겨져 있다.

그 옆의 나한상은 착의형식은 앞의 나한상과 같은데, 오른쪽 무릎을 세운 윤왕좌의 자세이며 무릎위에 손을 올려놓고 있다.

향 우측 제3상은 신작(新作)으로 왼손에는 보주를 쥐고 유희좌의 좌세로 앉아 있다. 제4상은 무릎위에 올려놓은 왼손에 긴 염주를 들었고 오른손은 오른 무릎 위에 놓았는데,

손가락을 구부린 표현이 재미있다. 제5상은 두 손을 마주 포개어 배위에 올려놓은 단정한 자세로 앉아 있으며,

제6상은 같은 형태의 승형 나한상으로 왼 무릎을 세운 윤왕좌로 앉아 오른손에 경권을 쥐고 있다. 제7상은 신작으로 유희좌로 앉아 등을 긁고 있다.

 제8상은 두 손위에 경책을 펼쳐들고 있다.

다음으로 향 좌측의 나한상은 제1상은 가사의 앞섶을 풀어헤쳐서 상체의 나신이 드러나며 의자에 앉은 의상인데 오른손으로 동자를 안고 있다.

제2상은 가사위에 두건을 덮어쓰고 두 손을 옷속에 가린 나한상이며, 그 옆의 제3상은 신작(新作)으로 오른손에는 석장, 왼손에는 염주를 들고 있다.

제4상은 두 손위에 경책을 펼쳐 든 모습이 향 우측 제8상과 유사하다. 제5상은 오른 무릎을 세워서 몸쪽에 붙이고 두손으로 무릎을 감싼 자세로 앉았는데,

이와 같은 유형은 오대와 송대의 나한상에서 보이며 원래는 세운 무릎위에 얼굴을 기대고 앉아있는 경우도 있다.

제6상은 신작으로 무릎을 세우고 앉아 그 위에 왼손을 올려놓았다.

제7상은 제4상과 마찬가지로 두 손위에 경책을 펼쳐든 나한상이며 제8상은 손의 모습으로 보아서 원래는 지물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십육나한상은 전체적으로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 획일화된 얼굴과 경직된 신체의 표현에서 조선말기 나한상의 특징을 보이고 있는데,

이 상들이 봉안되어있는 영산전 후불탱화 화기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1895년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어 조선 말기의 기년작으로서 중요한 예라고 생각된다.

함께 섞여있는 신작(新作)의 나한상들은, 향 우측의 나한상들 가운데 세 번째와 일곱 번째 상, 향 좌측의 나한상 가운데

세 번째와 여섯 번째 상으로, 원래의 나한상들보다 체구와 두부가 크며 얼굴의 표현도 다르다.

봉은사 영산전 십육나한상은 현재 4구를 잃어 원상(原象)은 12구만 전하고 있으나 조각적으로 우수하고 1895년이라는 정확한 조성시기를 알 수 있는

조선시대 십육나한상으로서 매우 중요한 예이므로 신작을 제외한 12구만을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한다.


 

 

 

 

 

 

 

 

 

 지 장전 [ 地裝殿 ]  

지장전은 주불로 지장보살을 모시고 죽은 이의 넋을 인도하여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전각이다.

석가모니부처님의  원을 이어 고통과 어려움에 처해있는 중생들을 구하고 병든 사람을위해 약초가 되겠다는 사원을 세워 "원력의 보살"이라고도하고,

지옥 중생들이 모두 구제될 때 까지 지옥에서 함께 고통을 받으며 중생을구하겠다는 서원을 세워 "악세중생의 부처님"이라고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