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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바다에서..

산세(山勢)가 호랑이 형상을 닮았다하여 불려지는 호암산,삼성산

 

 

 

 

호암산 석구상(虎巖山 石狗象)

 

발 아래로 보이는 금천구 시흥동 일대.

태극기가 보일락 말락~

펄럭~~입니다~~~

관악구 신림돔 서울대학교 방면

관악산 정상 통신대

삼성산 정상

 

 

 

삼막사 칠보전 지붕

 

 

 

 

 

 

 

 

 

봄을 준비하는 손

 

 

 

응달엔 아직 고드름이 겨울을 보내지 않았음을 말하고...

 

그 곁엔 푸른 이끼가 돋아나고 있다.

 

 

 그렇게 겨울은 우리곁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호암산(虎巖山)은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에 있는 산으로 관악산 서쪽 끝 봉우리이다.

산자락에 호압사가 있어 호압산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원래는 금주산 · 금지산(금천의 주산)이라고도 불렀으며

산세가 호랑이 형상을 닮았다하여 호암산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산자락에 수도청장을 지낸 장택상의 별장 등 많은 별장이 위치하여 주민들은 별장산이라고도 부른다.

옛날에는 시지산이라고도 불렀다고 하는데 한다.

호암산 산행은 경부선 석수역에서 시작할 수 있다.

 

호암산자락에 있는 석구상(石狗象)은 호암산성 안에 있는 연못인 한우물(한우물 및 주변 산성지, 사적 제343호)로부터 동북쪽 50m 지점에 있는 동물석상이다.

관악산의 화기를 누름으로써 한양에 화재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다는 조선시대의 도읍설화와 연관된 해태상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 석상이 해태보다는 개의 형상에 더 가깝고, <시흥읍지> ‘형승조’에도 이를 뒷받침해줄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석구상인 것으로 밝혀졌다.

길이 1.7m, 폭 0.9m, 높이 1.0가량으로,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부각되어 있고 발과 꼬리부분 또한 잘 묘사되어 있는 등 석상기법이 세밀하고 사실적이다.

한우물 근처에서는 ‘석구지(石拘池)’라는 명문이 새겨진 석재가 발견되었는데 한우물이 석구지라 불린 것은 석구상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호암산에 북쪽을 향해 금방이라도 뛰어갈 듯한 호랑이 형상의 바위가 있는데,

 이 호랑이가 한양을 향해 날뛰는 형상을 하고 있어 금천현(현재 금천구)의 지세가 쇠퇴하고,

금천현이 쇠퇴하면 결국 한양까지 재앙이 옮겨올 것이라는 풍수지리설에 의해 조선 태조는 이 바위 북쪽에

활에 해당하는 궁교(弓橋)와 사자에 해당하는 사자암을 지어서 호랑이를 날뛰지 못하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사자암은 관악산 줄기인 삼성산 국사봉 아래에 있는 사찰로, 1398년(태조 5) 무학대사 자초(自超 1327∼1405)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사자암이 있는 삼성산과 인근의 호암산은 산의 형세가 북으로 내달리는 호랑이 형국이라 풍수상 조선의 수도 한성에 좋지 않았다.

무학대사는 그 기세를 막기 위해 사자 형상을 띤 국사봉 아래에 사자암(獅子菴)을 세웠고,

호암산에는 호랑이를 제압한다는 의미를 지닌 호압사(虎壓寺)를 세웠다 한다.

 

삼성산(三聖山)

삼성산은 서울특별시 관악구,동작구,금천구와 경기도 안양시에 걸쳐 있는 높이 481m의 산이다.

관악산과 같은 줄기를 이루고 있으며, 도림천 기준으로 서쪽은 삼성산, 동쪽은 관악산이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신증동국여지승람』 금천현에 '현 동쪽 10리 지점이 있는데, 진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1757년(영조 33)에 홍양한(洪良漢)의 건의로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책을 만든 전국 읍지(邑誌)로 알려진 『여지도서(輿地圖書)』 금천현에는 '관아의 동쪽에 있다.

민간에 전하는 말에 따르면, 무학(無學), 나옹(懶翁), 지공(智空) 세 큰 스님이 각각 절 지을 곳을 점치고 살았기 때문에 삼성산이라 이름 하였다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관악산의 자락으로 삼성산의 지맥 줄기에 있는 국사봉(國思峰, 181m)은 동작구에 위치해 있다.

동쪽으로는 국립묘지의 진산으로 알려진 화장산(華藏山, 일명 갯말산, 대머리산, 공작봉(孔雀峰)으로 불려짐) 지맥과 이어진다.

지덕사(至德祠)가 위치한 남쪽 산으로 이 지명은 양년대군이 여기에 올라 경복궁을 바라보며 나라와 세종의 일을 염려하였다는 뜻에서

나라 국(國), 생각할 사(思)를 붙인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2015.이월 마지막 날.

지인들과 산행을 하며 몇커트 남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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