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마을 북평 이진성지(梨津城址)
이진성지(梨津城址)은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에 있는 성터이이며 1988년 12월21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20호로 지정되었다.
마을주민들이 이순신을 극진히 돌본 이진은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속한다.
이진마을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완도와 마주하고 있다.
두륜산과 달마산, 천태산으로 둘러쳐진 마을이다. 지형이 배 모양을 닮았다.
이진은 당시 군사와 교통의 요충지였다.
이순신도 조선수군을 재건해 명량으로 갈 때 이 마을 앞을 지났다.
여기에 진(鎭)은 1598년(선조 21년)에 설치됐다.
1627년(인조 5년)에 만호진으로 승격됐다. 진은 1895년(고종 32년)에 폐지됐다.
성곽도 일부 복원했다. 당시 우물이 마을에 그대로 남아 있다.
성터에는 수령 300년 넘은 해송 58그루가 방풍림을 형성하고 있다.
여름엔 시원한 숲그늘을 만들어 준다. 분지 주변은 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진성의 서문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만호비 4기가 세워져 있다.
당초 이진진성 안에 있던 농협창고 옆에 있었다.
1980년대 들어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다.
만호비 앞으로 조선수군 재건로를 알리는 안내판도 세워져 있다.
마을에 돌담이 많다.
여느 마을처럼 석축의 일부가 마을 앞 도로를 포장하는 데 들어갔다고 전해진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빈번한 일이었다.
주민들은 당시 이순신을 살렸던 마을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진진성은 1648년(인조 26년)에 쌓았다.
남쪽과 북쪽의 높은 구릉지를 이용해 쌓고 중앙이 낮은 분지형으로 마을을 에워싸고 있다.
성벽은 바깥을 돌로 쌓고 안쪽은 자갈과 흙으로 채웠다.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당시 성안에는 두 곳의 샘과 객사, 동헌, 군기고가 있었다.
외곽으로 1차 방어시설인 해자와 목책을 뒀다.
지역의 방어와 제주도와의 물자를 교류한 통제소 역할을 했다.
당시 성곽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서문 터에는 성문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폭 3m, 높이 5m, 길이 34m의 옹성이 있다.
서문 밖으로 해자의 흔적도 남아있다. 서문에 사용됐던 초석 2개도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