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光復)의 환희와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38선(線)을 경계로 국토는 분단되고
민족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서 대치하고 있을 때 북한 도발은 날로 심하였었다.
드디어 1949. 7. 1 태백산맥을 이용 무장공비 100여명을 남파하였다.
그리하여 오대산 일대의 산간지방에 출몰하여 관공서를 기습하고 민간인을 학살 약탈하였는데
범위는 도암면 용산리, 진부면 봉산리, 대화면 신리, 오대산 조개골 등이었다.
이때 평창경찰서의 전공은 무장공비 사살 50명, 생포 12명, 무기 100정을 노획하였다.
1949. 7. 7 새벽 봉산리 전투에서는 순경 김수복 등 4명이 부상되고
총경 정운봉, 경위 김용연, 경위 이진호, 경위 박수동, 경위 허균, 경위 하용선, 경위 조백현, 경위 김용철 등 9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나고 그들의 숭고한 애국충정을 기리고자 격전지의 일부였던 오대산 기슭에
후배경찰들과 지역사회 인사들이 뜻을 같이하여 전적비를 세우게 된것이다.
2016.08
'산,들,바다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선화암동굴(旌善畵岩窟) #1 (0) | 2016.08.17 |
---|---|
부여 궁남지 (0) | 2016.08.16 |
정상 만끽 (0) | 2016.08.15 |
진고개 고랭지(高冷地) 배추밭 (0) | 2016.08.14 |
시흥갯골생태공원의 線 (0) | 2016.0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