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우리 민족은 일제에 의한 강제점령이라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시기는 민족의 자존심을 훼손당하고, 민족 스스로의 발전이 중단되는 고통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역사적 현실에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는 민족 독립을 향한 투쟁의 역사가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지금 우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기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바로 그러한 역사의 계승을 위한 배움터로 마련되었습니다.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들은 물론, 온 국민들이 순국 선열들의 뜻을 기리고,
부끄러운 지난날의 역사를 극복하기 위한 애국애족의 뜻을 배우는 역사의 산 교육장이 되고자 합니다.
과거 일제감점기 당시의 독립 투사와 해방 이후 군사 독재 시절의 민주화 운동가를 수감하였던 과거 악명 높았던 감옥이자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현장이다.
1908년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으며, 1987년 경기도 시흥군 의왕읍으로 이전하기까지 사용되었다.
최초의 근대식 감옥이기도 하다.
크기는 부지 19만 8,348m2, 연건축면적 26,446m2, 수감 가능인원 3,200명(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지금의 역사관은 당시 부지 중 일부만을 재보수 및 복원해놓은 것이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의 구성은 출입문 바로 앞으로 보이는 전시관, 바로 뒤로 중앙사, 그리고 그를 이어서 제 9~12옥사와 공작사, 한센병사,
추모비, 사형장, 시구문, 격벽장, 여옥사(구 유관순 지하감옥), 취사장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시관 지하 고문실에는 밀랍인형으로 고문을 받는 독립운돈가들의 모습을 실감나게 재현한 데다가, 고문실 자체가 지하에 있어 어두캄캄하기 때문에
견학하러 온 어린 학생들에게 트라우마를 심어줄 정도인데다가 여성 독립지사를 고문 장면을 재현한 데에는 처절하게 음성까지 들린다(...) 센서라지만 무섭다.
한 사람이 서 있을 공간만 있어 2~3일 동안 갇혀있으면 전신마비가 온다는 고문실인 벽관도 재현해 놓았는데, 이것도 정말 무섭다.
무서운 것에 약하던가 폐쇄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웬만하면 가지 말자.하지만 견학 온 유딩들은 잘도 본다.
대부분의 감옥은 옥문을 닫아놓았지만 몇 개는 열어놓아서, 3평 남짓한 옥내를 구경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단, 유관순지하감옥은 완전히 막아놓았는데, 유리로 막아놓았기 때문에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조로 내부를 관찰할 수 있다.
대부분의 감옥은 3평에서 5평 정도로 운신의 폭이 있지만 지하감옥은 독방이라 그런지 한평 남짓한 좁은 내부를 가지고 있다.
갇혀있던 독립운동가들의 옥고를 짐작하게 할 수 있을 만한 구조이다.
서대문형무소 역사전시관과 중앙사는 역사 교육의 장으로 개조해서 영상실, 기획전시실, 자료실, 옥중생활실, 임시 구금실, 고문실 등으로 당시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 놓았고,
나머지 7개 동의 옥사 중 제 10, 11, 12 옥사는 사적 제324호로 지정되어 있다.
2010년부터 전시물 교체 정비를 하여 1987년 서대문 형무소 이전 당시 철거되었던 식당, 격벽장, 여옥사(1979년 철거) 등을 복원해냈으며,
보안과 건물 역시 일제강점기 시절 그대로 복원해 내기도 했다.
참고로 서대문 형무소의 옥사와 격벽장은 한국에서 흔한 구조가 아닌 파높티콘 구조로 만들어진 형무소였다.
중앙사는 중앙사로부터 연결된 모든 옥사를 다 감시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지만 감방에서 간수를 육성으로 부르기는 쉽지 않았다고 한다
201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