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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찰,성당,교회)

해탈문(解脫門)밖 은행나무가 서있는 풍경

 

 

 

 

 

 

 

 

1458(세조 4)년 세조는 피부병을 치료코자 문무대관과 금강산을 유람하다 돌아오던 길이었다.

당시 세조는 피부병을 낫고자 물 좋은 곳을  찾아다녔다.

우연히 지금의 양주 부근에서 하룻밤 청한 그날 새벽, 불현듯 종소리가 들려왔다.

세조는 신하들에게 연유를 알아오라 일렀다.

종소리를 따라간 신하들은 뜻밖에 바위굴을 찾았고, 굴속 바위틈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마치 종소리 같았다.

세조에게 고했다. “신들이 종소리를 따라가니 어느 바위굴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였습니다.

그 바위굴 안엔 18나한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세조는 물소리의 신비를 지키고 싶었다.

옛 절을 다시 고쳐 세우라고 명했다.

이듬해인 1459년 중창이 끝나자 손수 수종사(水鐘寺)라 이름 짓고, 절에 올랐다.

세조는 바위굴서 떨어지는 청명한 종소리의 샘물을 보고 은행나무를 심었다.

수령이 500년은 족히 지난 은행나무는 가지를 사방으로 넓게 펼치고 있었다.

가지 사이로 두물머리가 엿보였다.

 

 

 

 

 

 

 

산과 골짜기를 가로질러 흐르던 두 강이 만나는 장관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광이 아니다.

강원도 태백 깊은 골 금대봉 기슭 검룡소(儉龍沼)에서 태어난 샘은 남한강이 되고,

금강산 금강천에서 흘러온 물줄기는 북한강을 이룬다.

강줄기 둘은 경기도 양평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만나 호흡을 함께 한다.

그렇게 남한강과 북한강은 몸을 섞고 있다.

그렇게 민초들 젖줄인 한강으로 서울로 흐른다.

 

 

뒤로 보이는 해우소옆 또 한그루의 은행나무.

 

 

 

 

 

 

 

 

 해탈문 밖 500년이 훌쩍 넘은 아름드리 은행나무 옆엔 ‘수종사 사적기’가 있다.

노거수인 은행나무가 드리운 그늘 아래는 삼정헌 다실 못지않은  또다른 느낌의 자리가 있어

거기에 속세에 긁힌 마음 한켠을 살그머니 내려둔다.

삼정헌과 함께 best of best 의 장소이다.

 

解脫門: 해탈에 이르는 문,

곧 모든 현상은 인연 따라 모이고 흩어지므로 거기에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공(空)과

대립적인 차별을 떠난 무상(無相)과 원하고 구하는 생각을 버린 무원()을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