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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찰,성당,교회)

파주 용미리 마애불입상 (波州 龍尾里 磨崖佛立像)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 높이 17.4m. 보물 제93호.

높이 17.4m. 보물 제93호. 천연 암벽을 몸체로 삼아

그 위에 목·머리·갓 등을 따로 만들어 얹어 놓고 있는 2구()의 거불()이다.

 

이 불상과 같이 자연 암벽을 이용하여 몸체를 만드는 수법은 고려시대에 들어와 몇 예가 보이고 있다.

안동이천동석불상(보물 제115호)이 이와 거의 같은 수법을 보여 준다.

그리고 경기도 이천의 영월암마애여래입상(보물 제822호)도 비록 머리를 따로 만들지는 않았으나,

천연의 암벽을 그대로 이용하여 몸체를 표현하고 있다.

 

왼쪽의 불상〔〕은 4각형의 갓을 쓰고 있고, 오른쪽의 불상()은 원통형의 관을 쓰고 있다.

이 둥근 갓을 쓴 불상은 안동의 이천동마애불과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그보다는 세속화된 얼굴을 보여 준다.

인체의 불균형, 옷주름의 형식 등으로 볼 때 보다 후대에 조성된 작품으로 보인다.

이처럼 머리 위에 갓이나 천개()를 씌우는 것은 눈 또는 비로부터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고려시대에 이르러 특히 유행하였다.

968년(광종 19년)에 조성되었다고 전하는 관촉사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8호)을 비롯하여

대조사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7호)·신복사지석불좌상(보물 제84호) 등에서 볼 수 있다.

 

이 두 상의 얼굴은 관촉사석조미륵보살입상·대조사석조미륵보살입상의 얼굴과 같이

모두 이마 부분보다 턱 부분이 넓은 거의 4각형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가늘고 긴 눈, 평평한 콧잔등의 큰 코, 꾹 다문 큰 입 등으로 대체로 큼직큼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인상()은 왼쪽의 방립불()은 두 손을 가슴 높이 들어 올려 합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합장한 손이 유난히 커서 신체 비례에 맞지 않는다.

오른쪽의 원립불()은 두 손으로 연꽃가지와 같은 것을 잡고 있다.

관촉사석조미륵보살상·대조사석조미륵보살상 등과 비교하면, 손의 위치만 바뀌었을 뿐 비슷한 모습으로 연꽃을 들고 있다.

이 형태로 보아 이 불상의 명칭 또한 미륵보살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가능하게 해 준다.

신체는 통견()의 법의로써 온몸을 감싸고 있다.

가슴에는 군의()를 묶은 띠 매듭이 보인다.

그 아래로 U자형의 옷주름이 선각()되어 있다.

두 손을 감싸 내리는 옷자락은 세로줄의 옷자락 무늬로, 비교적 유연하게 처리하고 있다.

구전()에 의하면 원립불은 남상(), 방립불은 여상()이라고 한다.

전설의 시대적 배경이 고려 선종 때라고 구체적인 왕명까지 들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불상의 조성 연대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이 불상은 고려 초기 건국의 신흥 기운을 타고 조성된 많은 거상()들의 한 예이다.

단지, 관촉사석조미륵보살상이나 대조사석조미륵보살상들과 같이 조각 수법이 그 기운을 따르지 못하여

괴체성()을 면치 못한 대표적인 불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불상의 옆에는 명문이 남아 있어서 앞으로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참고로 제가 보기엔....

불상 옆에있는 명문은 닳아져서 그 형체를 가늠하기가 힘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