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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속에서..

4H 조형물

 

 

 

 

 

 

 

 

 

 

4-H운동 제50주년 기념상(농촌진흥청)

우리나라에 4-H회가 처음 들어온 것은 1947년 3월

경기도에서 처음 조직되어, 당시 각 마을에서 활동한 4-H회를 ‘4-H구락부(俱樂部)’라고 했다고 한다.

"4-H클럽(club)"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일본식 발음인 "구락부"로 표기한 것 같다.

 

그 후년 12월 4-H구락부 운동을 정부시책으로 채택하게 되었다.

1954년 한국 4H구락부 중앙위원회(현 한국 4H본부)를 설립하고,

1957년 농사원이 발족되어 4H를 관장하게 된 후 농촌진흥청이 발족되었다.

1972년 새마을 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되면서

4-H 구락부를 새마을 4-H구락부로 개칭하였으며,

1974년 한국 4-H구락부 중앙위원회를 4-H 한국 4-H 연맹으로 4-H개편하였다.

이후 한국 4-H후원회, 한국 크로버 동지회, 한국 4-H본부로 통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4-H"는 지(智. Head) 덕(德. Heart)  노(勞. Hands) 체(體. Helth)의  머리글자인 H자를 따서

4-H로 부르게 되었는데, 그 유래는 1902년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총장인 버드 셰어는

교육의 지표를 3R 즉 일기, 쓰기, 셈하기보다는 3-H

즉, 머리, 마음, 손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역설했다.

이 주장에 따라 1907년에 세 잎 클로버에 "H"를 넣어서 상징적 마크로 쓰기 시작했다.

그 후 1911년 미 농무성에 관계하던 벤슨이라는 사람이 "4-H클럽"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으며,

옥수수 클럽 등 과제 이름을 붙여오던 명칭에 4-클럽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1920년 경이다.

밴슨은 4-H는 "머리", "마음", "손" 그리고 "건강"을 뜻하는 네 개의 "H""H"자를 나타낸 것이라고 했다.

즉 생각하고 계획하고 추리하는 두뇌, 진실하고 친절하고 동정심을 갖는 마음, 유용하고 도움이 되고

정교한 손, 질병을 이기고 생활을 즐기며 능률을 올릴 수 있는 건강을 균형 있게 수련함을 뜻한다고 했다.

 

건립취지문

우리나라의 4-H운동은 지, 덕, 노, 체 의 실천 이념과

 

'좋은 것은 더욱 좋게"

전국 방방곡곡으로 확산되어 농촌 청소년들이 건전하고 생산적인 민주시민으로 성장하여

도시에서나 농촌 사회에서 선도적 역군으로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제 4-H 운동의 새로운 반세기를 맞아 조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우리의 청소년들로 하여금

농촌을 사랑하고 자연을 가꾸며 흙의 문화를 창달하려는 결의를 다짐하는 동시에

세계 청소년들과 함께 지구촌의 공존공영을 위해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려 한다.

이에 전국의 9만 4-H회원과 4-H를 사랑하는 분들의 뜻을 모아 4-H운동 50주년을 기리고

우리의 영원한 고향이요 생명의 뿌리인 농업과 농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제37회 4-H 중앙 경진대회를 맞아 이효계 농림부 장관, 김동태 농촌진흥청장,

조규일 한국 4-H후원회장, 오세복 한국 4-H중앙 연합회장과 4-H인들에 의해 제막되었다.

1997년 11월 10일

 

수원 농촌 진흥청